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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영웅,예술 전시회

by 건강 외길인생 skdkcks 2020. 10. 16.


 

 

 -바스키아의 한 인터뷰 내용-

 

 

기자: 바스키아 씨 본인의 그림 안에 있는 이 글을 해석해주시겠소?

 


바스키아: 해석이요? 이건 그냥 글자입니다.

 
기자: 알겠습니다. 그럼 이런 영감은 어디서 가져오는 건가요?

 


바스키아: 음악가에게 음표는 어디서 가져오는지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디서 말을 가져옵니까?






장 미쉘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1960-1988)

 

 

 

 

검은 피카소라고도 불리는 그래피티 자유구상 팝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Republic of Haiti)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었다.

 


당시 프랑스어가 모국어였던 아버지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던 바스키아는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할수있었고, 이런 그의 다양한 언어 사용은 

 

장 미쉘 바스키아 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언어를 표현된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당시 흑인임에도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장 미쉘 바스키아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아를 데리고 뉴욕의 주요 미술관 방문하였다.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장 미쉘 바스키아는 다빈치, 피카소에 등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후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8년 교통사고로 인해  당시 팔이 부러지고 내장을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장기간의 수술과 치료로 인해 장 미쉘 바스키아는 병원에 있게 되며 

이런 바스키아에게 어머니에게 "그레이의 해부학 Gray’s Anatomy" 책을 선물하게 된다.

  입원 기간동안  바스키아는 해부학 책을 통하여 인간의 인체 구조와 해부학적 지식에 대해 알게 된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갔던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보고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편 피카소의 "게르니카" 라는 작품은 

 

1937년 04월 26일 독일 나치 정권이 스페인 정부와 재전 중이던 프랑코 반란군 편에서 자행한

  민간인 무차별 공격으로 인해  스페인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 24대의 비행기가 무차별 폭격 공격하여

  약 1600명이 사망하며 약 900명이 중상을 입게되었다.

  이후 피카소는 자신의 조국의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자 분노에 휩싸여 그림을 그렸고

  완성한 작품이 바로 "게르니카" 이다. 
 


 

  



바스키아는 이후 상황이 않좋아 지며 집을 나와 노숙하며 길거리에서 우편과 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팔면서 생계를 근근히 유지하던 장 미쉘 바스키아는 

그 당시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클럽 57과 머드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영화제작자, 음악가이자 큐레이터인 "디에고 코르테즈(Diego Cortez)"를 만나게 된다.

 

 

 


 


디에고 코르테즈(Diego Cortez)는 바스키아의 뛰어난 재능을 바로 알아보고는 

  그의 작품을 다량으로 구입하는등 그의 지원을 도왔다.

이후 장 미쉘 바스키아의 첫 개인전은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그의 작품은 하루 만에 모두 팔려나갔으며, "미술 잡지"에 실리는 등

유럽의 가장 권위있는 전시 중 하나인 《카셀 도큐멘타 7 Kassel Documenta 7》에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들이 출품되며 바스키아는 "미술 잡지"에 소개되며 미술계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게 된다.


 

 

 

 

 

 

 

 

 





이후 장 미쉘 바스키아는 브루노 비쇼프버거의 소개로 자신이 존경하는

  팝아트계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만나게 된다.

그 후 비쇼프버거의 권유로 앤디 워홀과 장 미쉘 바스키아는 서로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한다.

 

 


 

앤디 워홀은 바스키아가 이후 팝아트 계의 자신의 뒤를 잇는 새로운 미술계의 별이 될 것임을 

  미리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협업하고 도우며 같이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많은 기간 동안 둘은 함께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둘의 전시회가 미술평론가들에게 비평을 듣게 되며

  앤디워홀과 바스키아는 협업을 그만하고 서로 따로 활동을 하게 된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흑인 인권 흑인 영웅 인종차별등 흑인들을 대변하는 여러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개인전을 하던 와중  

1987년 바스키아에게는 친구이자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았던 팝아트계의 거장 앤디 워홀이 

  당시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자 바스키아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후 앤디 워홀의 죽음으로 인해 바스키아는 삶에 의지를 내려놓고 

 

그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천재화가이며 젊은 나이임에도

  안타깝게도 마약 남용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길거리생활에서 팝아트계의 천재 스타로 부상한 바스키아는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점의 

  작품과 드로잉과 1,000여 점이 넘는 회화와 조각 작품 등을 남겼다.

팝아트계 유명화가들  중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이들의

  이름이 거론될때 빠지지 않는 팝아트 화가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이다.

  바스키아는 당시 문제로 삼으며 비판하던 거리의 낙서를 그래피티 라는 예술로 승화시키며 예술활동을 하였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품은 현재 아직까지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시 안내


 

 

이번 롯데뮤지엄에서 인종차별 흑인 인권 등 그래피티 자유구상 팝아트 계의 

 

천재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의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 150여 점의 원화를 선보이는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을 개최한다.

 


  1980년대 초 뉴욕에 혜성처럼 나타나 팝아트계의 슈퍼 스타가 되었던 장 미쉘 바스키아는

 

안타깝게도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작품은 현재 지금까지도 미술, 음악과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의 원천으로 새롭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전시회  기간


2020년 10월 08일(목요일) ~ 2021년 02월 07일(일요일)



 


전시회 관람 가능 연령


전체 관람가  가능


 

 


 

전시회 관람비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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